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6부 — 이상운동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약을 먹었더니 이번에는 움직임이 지나쳐 버린다. 이상운동증은 약이 많아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도파민 곡선의 모양과 회로의 적응이 함께 만든다.
6부. 이상운동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도파민이 부족한 병에서, 왜 몸은 오히려 너무 많이 움직일까
파킨슨병은 흔히 움직임이 줄어드는 병이라고 설명한다.
손이 느려지고, 걸음이 짧아지고, 몸이 굳고, 출발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처음 파킨슨병을 배울 때는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도파민이 부족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병이구나.”
그런데 병이 오래되고 레보도파를 여러 해 복용하다 보면 전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몸이 가만히 있지 못한다. 목과 어깨가 흔들리고, 허리가 꼬이고, 팔과 다리가 저절로 춤추듯 움직인다.
이것이 **레보도파 유발 이상운동증(levodopa-induced dyskinesia, LID)**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도파민이 부족해서 생긴 병인데, 그 부족한 도파민을 보충했더니 이번에는 움직임이 지나쳐 버린다.
나는 파킨슨병을 오래 겪으면서 이 현상을 단순히 “약이 세게 들었다”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신경해부학과 약리학을 다시 공부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상운동증은 단순히 도파민의 양이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도파민이 뇌에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느냐이다.
그림 2. (왼쪽) 정상 vs 파킨슨: 도파민 파동의 차이. (오른쪽) 이상운동증이 약효 곡선의 어느 위치에서 발생하는가
1. 정상 뇌의 도파민은 부드럽게 흐른다
정상적인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는 선조체로 도파민을 지속적으로 보낸다.
도파민 농도가 갑자기 크게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저 농도를 유지하면서 필요할 때 작은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를 쉽게 표현하면 도파민은 수도꼭지에서 물이 조금씩 계속 흐르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 몸이 움직일 때마다
“지금 움직여라.”
“이 동작을 유지해라.”
“이제 멈춰라.”
라는 신호가 아주 세밀하게 조정된다.
따라서 정상인의 기저핵은 움직임의 스위치를 단순히 켜고 끄는 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움직임의 크기와 속도를 계속 미세 조절하는 장치
에 가깝다.
2. 파킨슨병에서는 도파민을 저장할 신경세포가 사라진다
파킨슨병에서는 흑질 치밀부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점차 줄어든다.
초기에는 남아 있는 신경세포들이 어느 정도 보상한다.
레보도파를 먹으면 뇌로 들어간 레보도파를 도파민으로 만들고,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조금씩 방출할 수 있다.
그래서 병의 초기에는 약을 먹었을 때 효과가 비교적 부드럽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도파민 신경세포가 더 많이 줄어들면 상황이 달라진다.
도파민을 만들어 **저장하고 완충(buffering)**할 능력이 떨어진다.
그 결과 혈액 속 레보도파 농도의 변화가 예전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선조체에 전달된다.
쉽게 말하면,
예전에는 뇌 안에 저수지가 있었다.
약이 조금 많이 들어와도 저장했다가 천천히 내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병이 진행되면서 그 저수지가 작아진다.
이제 약이 들어오면 도파민이 급격히 올라가고,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급격히 내려간다.
3-1. 5-HT 뉴런이 개입하면서 문제가 커진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다. DA 뉴런(도파민 신경세포)이 줄어들면 레보도파를 도파민으로 변환하는 역할을 **5-HT 뉴런(세로토닌 신경세포)**이 대신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5-HT 뉴런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도파민을 만들 수는 있지만 저장하고 조절하는 능력이 없다. 만들자마자 그대로 선조체에 쏟아낸다.
그 결과 레보도파를 먹을 때마다 도파민이 급격히 치솟았다가 급격히 떨어지는 파동이 반복된다. 초기에는 DA 뉴런이 이 파동을 완충해 주었다. 하지만 DA 뉴런이 소실될수록 5-HT 뉴런의 조절 없는 방출이 주도하게 되고, 곡선이 점점 더 출렁이게 된다.
그림 3. 초기 파킨슨병(왼쪽)에서는 DA 뉴런(파란 점)이 도파민을 저장·조절하여 곡선이 안정적으로 치료창 안에 머문다. 진행기(오른쪽)에서는 DA 뉴런이 소실되고 5-HT 뉴런이 레보도파를 조절 없이 그대로 방출하면서 파동이 급격해져 이상운동증(위) 또는 OFF(아래) 위험 구간을 반복적으로 이탈한다.
3. 문제는 ‘양’보다 ‘파동’이다
레보도파는 복용하면 혈중 농도가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진다.
하루에 여러 번 복용하면 이런 파동이 반복된다.
도파민 신경세포가 충분히 남아 있을 때는 이 파동을 어느 정도 완충할 수 있다.
하지만 신경세포가 많이 소실되면 선조체의 도파민 수용체는 하루에도 여러 번
강한 자극 → 약한 자극 → 강한 자극 → 약한 자극
을 반복해서 경험한다.
이를 pulsatile dopaminergic stimulation, 즉 맥동성 도파민 자극이라고 한다.
나는 이것이 이상운동증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운동증은 단순히
도파민이 많아서 생기는 현상
이라기보다,
도파민 신호가 지나치게 출렁이는 상태에 뇌가 오랫동안 적응하면서 만들어진 비정상적 운동 회로
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4. 직접경로가 지나치게 열리기 시작한다
기저핵에는 움직임을 촉진하는 **직접경로(direct pathway)**와 움직임을 억제하는 **간접경로(indirect pathway)**가 있다.
도파민은 D1 수용체를 통해 직접경로를 활성화하고, D2 수용체를 통해 간접경로의 억제 효과를 줄인다.
결과적으로 도파민은 움직임을 쉽게 만든다.
파킨슨병의 OFF 상태에서는 도파민이 부족하다.
직접경로의 힘은 떨어지고 간접경로의 억제는 강해진다.
그래서
움직이기 어렵다.
반대로 레보도파가 강하게 작용하는 순간에는 직접경로가 급격히 활성화될 수 있다.
특히 오랫동안 맥동성 자극을 받은 선조체의 신경세포는 정상보다 자극에 민감해질 수 있다.
그 결과 운동을 촉진하는 신호가 필요 이상으로 강해진다.
이때 몸은
“움직여라.”
라는 명령을 너무 많이 받게 된다.
5. 문제는 D1 수용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이상운동증은 D1 수용체가 자극된다는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없다.
도파민 수용체 아래에는 수많은 세포 내 신호전달 과정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D1 수용체 → cAMP → PKA → DARPP-32
같은 경로가 활성화된다.
반복적인 강한 도파민 자극이 이어지면 이러한 신호전달 체계가 점점 과민해지고, 유전자 발현과 시냅스의 성질까지 변한다.
즉 뇌가 단순히 그 순간 약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된 자극에 의해
회로 자체가 학습되고 변화한다.
이를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정상적인 학습에서는 가소성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상운동증에서는 잘못된 방향으로 학습이 일어난 셈이다.
6. 글루탐산도 함께 흔들린다
기저핵은 도파민만으로 움직이는 회로가 아니다.
대뇌피질에서 선조체로 들어오는 주요 흥분성 신호는 **글루탐산(glutamate)**이다.
도파민 신호가 반복적으로 출렁이면 글루탐산 회로의 반응도 변한다.
특히 NMDA, AMPA 수용체와 같은 글루탐산 수용체의 기능과 위치가 바뀌면서 선조체 뉴런의 흥분성이 비정상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이상운동증은
도파민만의 병이 아니라 도파민과 글루탐산이 함께 만들어 내는 회로의 병
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점은 아만타딘이 이상운동증을 줄이는 이유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아만타딘은 NMDA 수용체의 과도한 글루탐산 신호를 억제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다.
7. 이상운동증이 나타날 때 기저핵의 출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저핵의 최종 출력부인 GPi, 즉 내측 창백핵은 평소 시상을 지속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직접경로가 활성화되면 GPi의 활동이 감소한다.
그러면 시상에 걸려 있던 억제가 풀린다.
이를 **탈억제(disinhibition)**라고 한다.
시상이 자유로워지면 운동피질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
적당히 탈억제되면 정상적인 움직임이 나온다.
그러나 지나치게 탈억제되면 운동피질로 올라가는 신호가 과도해질 수 있다.
그 결과
원하지 않은 움직임, 과도한 몸통 움직임, 팔과 다리의 불수의 운동,
즉 이상운동증이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OFF와 이상운동증은 서로 전혀 다른 병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회로의 양 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OFF에서는 문이 너무 닫혀 있고,
이상운동증에서는 문이 너무 열려 있다.
8. 왜 약을 먹고 가장 좋을 때 이상운동증이 생길까
가장 흔한 형태가 peak-dose dyskinesia이다.
레보도파 농도가 가장 높을 때 나타나는 이상운동증이다.
환자의 느낌은 묘하다.
몸은 잘 움직인다.
걷기도 쉽고, 손도 잘 움직이고, 몸의 굳음도 풀린다.
그런데 동시에 몸이 흔들린다.
즉
ON은 맞지만 너무 높은 ON
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내가 몸으로 경험한 이상운동증 역시 단순히 ON과 OFF 두 상태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OFF → 상승 → 좋은 ON → 이상운동증 → 다시 좋은 ON → 하강 → OFF
와 같이 약효의 높이와 방향에 따라 여러 단계가 존재했다.
그래서 파킨슨병을 단순히
ON / OFF
두 글자로만 기록하면 상당히 많은 정보가 사라진다.
9. 약효가 올라가고 내려갈 때 생기는 이상운동증도 있다
모든 이상운동증이 peak-dose dyskinesia는 아니다.
레보도파 농도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중간 구간에서 나타나는 diphasic dyskinesia도 있다.
이 경우에는 약효가 최고점일 때보다 오히려
ON으로 올라가는 과정과 OFF로 떨어지는 과정
에서 이상운동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환자에 따라서는
약을 더 줄였더니 오히려 이상운동이 심해지거나,
레보도파를 조금 보충했더니 이상운동이 줄어드는
역설적인 현상도 가능하다.
이것이 이상운동증 치료가 단순하지 않은 이유다.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만 보고
“약이 너무 많군.”
이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운동증이 약효 곡선의 어느 위치에서 발생했는가를 먼저 봐야 한다.
10. 이상운동증과 디스토니아는 겹치지만 다르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흔한 또 하나의 문제가 **디스토니아(dystonia)**이다.
발가락이 안으로 말리거나, 발이 뒤틀리거나, 특정 근육이 지속적으로 수축한다.
이상운동증은 비교적 흐르듯 움직이는 불수의 운동이 흔한 반면,
디스토니아는 특정 자세가 고정되고 근육이 지속적으로 수축하는 형태가 많다.
그러나 실제 환자의 몸에서는 둘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특히 약효가 오르거나 떨어지는 전환기에는
dyskinesia와 dystonia가 섞여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몸으로 경험할 때는 교과서처럼 깨끗하게 나뉘지 않는다.
11. 결국 목표는 도파민을 많이 넣는 것이 아니다
파킨슨병 약물치료의 목표는 단순하지 않다.
OFF를 없애기 위해 레보도파를 계속 높이면 이상운동증이 증가할 수 있다.
반대로 이상운동증을 없애려고 약을 지나치게 줄이면 심한 OFF가 나타난다.
따라서 목표는
도파민을 최대한 많이 넣는 것
도 아니고,
도파민을 최대한 줄이는 것
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뇌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파민 자극을 가능한 한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여러 차례 약효를 기록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다.
높은 피크를 만드는 것보다 낮은 골짜기를 줄이는 것이 중요할 때가 있다.
좋은 치료는 최고점을 높이는 치료가 아니라
약효 곡선을 평평하게 만드는 치료
일 수 있다.
몸으로 이해한 이상운동증
나는 오랫동안 이상운동증을
“약이 많이 들어간 상태”
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파킨슨병이 오래되면서 뇌가 도파민을 저장하고 완충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레보도파가 들어올 때마다 도파민 자극이 급격히 올라갔다 내려가며,
그 자극이 반복되면서 선조체의 신경회로가 점점 과민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상적인 움직임을 만들어야 할 회로가 필요 이상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즉 이상운동증은 하루아침에 생긴 부작용이 아니다.
오랜 질병 진행과 반복되는 도파민 자극이 함께 만들어 낸 신경회로의 변화이다.
그래서 이상운동증을 이해하려면 약 한 알만 보아서는 안 된다.
그 약이 만들어 내는
시간에 따른 도파민 곡선 전체
를 보아야 한다.
내가 파킨슨병을 기록하면서 계속 약효의 상승과 하강, 피크와 골짜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6부 한 줄 정리
이상운동증은 도파민이 단순히 많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도파민 신호의 반복적인 출렁임으로 기저핵 운동회로가 과민하게 재편되면서 만들어지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