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부록 1장 — 파킨슨병과 파킨슨증후군은 무엇이 다른가
비슷하게 보이지만 같은 병은 아니다. 파킨슨병은 파킨슨증후군이지만, 모든 파킨슨증후군이 파킨슨병은 아니다.
부록 1장. 파킨슨병과 파킨슨증후군은 무엇이 다른가
— 비슷하게 보이지만 같은 병은 아니다
파킨슨병이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손이 떨리고,
몸이 굳고,
동작이 느려지고,
걸음이 짧아지는 병.
그런데 진료실이나 의학서적을 보다 보면 또 하나의 비슷한 말이 등장한다.
파킨슨증후군(parkinsonism).
처음에는 같은 말처럼 들린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 차이가 아주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두 용어는 같지 않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이것이다.
파킨슨병은 하나의 특정 질환이고, 파킨슨증후군은 비슷한 운동증상을 보이는 여러 상태를 묶어 부르는 임상적 표현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면 파킨슨병 자체도 훨씬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1. 파킨슨증후군은 ‘증상의 묶음’이다
파킨슨증후군은 하나의 병명을 뜻하지 않는다.
보통
서동(bradykinesia),
경직(rigidity),
안정시 떨림(rest tremor),
자세불안정(postural instability)
같은 파킨슨성 운동증상이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즉 환자가
“느리고, 굳고, 떨리고, 걷기 어렵다.”
는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모두 파킨슨병인 것은 아니다.
서로 다른 원인과 병리기전을 가진 여러 질환이 비슷한 운동증상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파킨슨증후군이라는 말이 필요한 이유다.
2. 파킨슨병은 파킨슨증후군 안에 들어간다
파킨슨병은 파킨슨증후군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이다.
쉽게 말하면
파킨슨증후군이라는 큰 상자 안에 파킨슨병이 들어 있다.
파킨슨병은 주로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 소실과 관련된 퇴행성 질환이다.
그 결과 선조체의 도파민이 감소하고,
기저핵 회로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서동,
경직,
떨림,
운동변동 등이 나타난다.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해 온 대부분의 내용이 바로 이 파킨슨병에 대한 이야기였다.
3. 그런데 비슷한 증상을 만드는 다른 병들이 있다
파킨슨병이 아닌데도 파킨슨성 운동증상을 만드는 질환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다계통위축증(MSA),
진행성핵상마비(PSP),
피질기저핵증후군(CBS),
루이소체치매(DLB)
등이 있다.
이들은 흔히 **비정형 파킨슨증후군(atypical parkinsonism)**이라고 불린다.
겉으로는 파킨슨병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각 질환의 고유한 특징이 드러난다.
4. 왜 처음에는 구별하기 어려운가
초기에는 증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몸이 느려지고,
한쪽이 굳고,
걸음이 짧아졌다고 하자.
이것만으로는 파킨슨병일 수도 있고 다른 파킨슨증후군일 수도 있다.
특히 질병 초기에는 각 질환의 특징적인 징후가 아직 충분히 나타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래서 파킨슨병의 진단은 단순히 한 번의 검사로 끝나는 경우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의 진행 양상과 약물 반응을 함께 보는 과정이 중요하다.
5. 파킨슨병은 보통 비대칭적으로 시작한다
전형적인 파킨슨병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비대칭성이다.
한쪽 손이 먼저 느려지거나,
한쪽 팔의 흔들림이 줄거나,
한쪽 다리가 먼저 끌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병이 진행하면서 양쪽에 증상이 생겨도 처음 시작한 쪽이 더 심한 경우가 흔하다.
반면 일부 비정형 파킨슨증후군에서는 비교적 양측성으로 시작하거나 빠르게 대칭적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
이 차이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감별에 도움이 된다.
6. 레보도파 반응은 매우 중요한 단서다
파킨슨병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레보도파에 대한 반응이다.
전형적인 파킨슨병에서는
서동,
경직,
일부 떨림
이 레보도파에 상당히 좋아질 수 있다.
환자는
“약을 먹으면 몸이 풀린다.”
는 변화를 분명히 느끼는 경우가 많다.
반면 비정형 파킨슨증후군에서는 레보도파 반응이 약하거나 일시적인 경우가 많다.
물론 예외는 있다.
초기에는 일부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단순히
“약이 조금 들었다.”
만으로 구별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분명하게, 얼마나 오래, 어떤 증상이 좋아지는가
이다.
7. 파킨슨병에서는 약효 변동이 하나의 특징이 될 수 있다
파킨슨병을 오래 겪다 보면
wearing-off,
delayed ON,
ON–OFF fluctuation,
dyskinesia
같은 약효 변동이 나타날 수 있다.
이것은 도파민성 약물에 충분히 반응하는 신경회로가 존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레보도파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파킨슨증후군에서는 이런 전형적인 약효 곡선이 뚜렷하지 않을 수 있다.
이 점도 감별에 도움이 된다.
8. 초기에 자주 넘어지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한다
전형적인 파킨슨병에서도 병이 진행하면 균형장애와 낙상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발병 초기에 반복적으로 심하게 넘어지는 경우에는 조금 다르게 봐야 한다.
특히 진행성핵상마비(PSP)에서는 초기부터 자세불안정과 낙상이 두드러질 수 있다.
따라서
“파킨슨 증상이 있는데 아주 초기에 자꾸 뒤로 넘어진다.”
는 이야기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9. 눈 움직임이 이상하다면 중요한 신호다
진행성핵상마비에서는 눈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기능, 특히 수직 안구운동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환자는
아래쪽을 보기 어렵거나,
계단을 내려가기 힘들거나,
음식을 볼 때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도 여러 안구운동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이런 특징적인 수직 안구운동 장애는 PSP를 생각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다.
10. 자율신경 증상이 너무 빠르고 심하다면
파킨슨병에서도
기립성 저혈압,
변비,
배뇨장애
같은 자율신경 증상이 흔하다.
하지만 질병 초기에 매우 심한 기립성 저혈압이나 배뇨장애가 두드러진다면 다계통위축증(MSA)을 생각하게 된다.
MSA에서는 운동장애와 함께 자율신경계 기능부전이 매우 중요한 특징이다.
즉 같은
“소변이 불편하다.”
“일어나면 어지럽다.”
라는 증상이라도
언제 시작했고 얼마나 심한지가 중요하다.
11. 한쪽 팔다리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
피질기저핵증후군(CBS)에서는 매우 독특한 증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한쪽 팔다리가 심하게 굳거나,
실행증(apraxia)이 나타나거나,
감각정보를 통합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때로는 자신의 손이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내 손이 아닌 것 같다.”
고 느끼는 이른바 alien limb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피질성 증상은 전형적인 파킨슨병과는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12. 인지와 환시가 초기에 두드러질 때
루이소체치매(DLB)에서는 인지기능 변화와 환시가 중요하다.
주의력과 각성 수준이 시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고,
구체적인 환시가 나타날 수 있다.
운동성 파킨슨 증상도 함께 나타날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도 병이 오래되면 인지장애나 환시가 나타날 수 있지만,
이런 증상이 운동증상과 매우 가까운 시기에 나타나는 경우에는 DLB를 고려하게 된다.
13. ‘레드 플래그’를 본다
파킨슨병과 비정형 파킨슨증후군을 감별할 때는 특정한 **경고 신호(red flags)**를 본다.
예를 들면
초기 반복 낙상,
빠른 질병 진행,
심한 초기 자율신경 장애,
수직 안구운동 장애,
뚜렷한 소뇌증상,
심한 조기 언어·연하장애,
초기 인지 및 행동 변화,
레보도파에 거의 반응하지 않는 심한 파킨슨증
등이 있다.
이런 신호가 있다고 바로 특정 질환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형적인 파킨슨병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14. 영상검사가 모든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환자들은 종종 MRI나 PET, 도파민 관련 영상검사 하나로 정확히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진단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MRI는 다른 구조적 질환을 배제하거나 특정 비정형 질환을 시사하는 소견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도파민 신경계 영상도 파킨슨성 퇴행이 있는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검사 하나만으로
“이것은 파킨슨병이고 저것은 MSA다.”
라고 항상 확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증상의 시작 방식,
진행 속도,
신경학적 진찰,
레보도파 반응,
비운동 증상,
영상소견,
시간에 따른 변화**
를 함께 보는 것이다.
15.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병 이름을 정확히 붙이는 것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치료와 예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파킨슨병은 레보도파에 잘 반응하는 경우가 많고,
적절한 환자에서는 DBS도 중요한 치료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반면 일부 비정형 파킨슨증후군은 레보도파 반응이 제한적이고,
DBS의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
또 어떤 질환은 자율신경 관리가 특히 중요하고,
어떤 질환은 낙상과 연하장애를 일찍 대비해야 한다.
따라서 정확한 감별은 실제 치료 계획을 바꾼다.
16. 파킨슨증후군을 보면 오히려 파킨슨병이 보인다
나는 여러 파킨슨증후군을 다시 공부하면서 오히려 파킨슨병의 특징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왜 파킨슨병에서는 한쪽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가.
왜 레보도파 반응이 중요한가.
왜 초기에는 보행과 균형이 상대적으로 보존되기도 하는가.
왜 오랫동안 약효 변동과 이상운동증이 중요한 문제가 되는가.
다른 질환과 비교하면 이런 특징들이 훨씬 선명해진다.
파킨슨병과 파킨슨증후군을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
아주 단순화하면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파킨슨병
파킨슨성 증상을 만드는 하나의 특정 퇴행성 질환
이다.
파킨슨증후군
파킨슨병을 포함하여 파킨슨성 운동증상을 보이는 여러 질환과 상태를 묶어 부르는 말
이다.
그래서
파킨슨병은 파킨슨증후군이지만, 모든 파킨슨증후군이 파킨슨병은 아니다.
이 한 문장을 기억하면 두 용어의 관계는 거의 정리된다.
몸으로 다시 생각해 본 파킨슨병
파킨슨병을 오래 겪으면 증상 하나하나에 민감해진다.
걷기,
떨림,
경직,
약효,
이상운동증,
자율신경 증상.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모두 파킨슨병이라는 한 이름 아래 똑같이 나타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다른 파킨슨증후군을 공부하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비슷하게 느려지고,
비슷하게 굳고,
비슷하게 걷기 어려워도
그 안에서 망가지는 회로와 병의 진행 방식은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병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겉으로 얼마나 비슷하게 보이는가가 아니라, 그 증상이 어떤 시간 순서와 어떤 회로의 변화 속에서 나타나는가
이다.
그리고 그 차이를 보고 나면
내가 지금까지 몸으로 경험해 온 파킨슨병의 모습도 오히려 더 분명하게 보인다.
부록 1장 한 줄 정리
파킨슨병은 하나의 특정 신경퇴행성 질환이고, 파킨슨증후군은 파킨슨병을 포함해 서동·경직·떨림 같은 파킨슨성 증상을 일으키는 여러 질환과 상태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