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 서문
평지에서는 첫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계단 앞에서는 발이 올라갑니다. 근육이 없어진 것도, 다리가 마비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디가 문제일까요.
나는 의과대학에서 신경해부학을 배웠다.
대뇌피질, 기저핵, 시상, 소뇌, 뇌간, 척수. 이름을 외우고 위치를 찾고, 어느 구조가 어느 구조와 연결되는지 공부했다.
그때의 신경해부학은 지도에 가까웠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가.
어떤 신경이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가는가.
어디가 손상되면 어떤 증상이 생기는가.
중요한 공부였지만 대부분은 책 속에 있었다.
그런데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그 지도가 갑자기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평지에서는 첫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계단 앞에서는 발이 올라간다.
좁은 문 앞에서는 몸이 멈추는데 바닥의 선을 넘으라고 하면 다시 움직일 수 있다.
앞으로는 안 되는데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이면 다시 출발할 수 있다.
가만히 서 있을 때는 몸이 굳어 있는데 음악의 박자를 타면 걷기가 조금 편해질 때가 있다.
이상했다.
근육이 없어진 것이 아니다.
다리가 마비된 것도 아니다.
움직일 힘은 남아 있는데 어떤 순간에는 움직임이 시작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근육에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움직임을 선택하고, 시작하고, 이어가는 회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질문 때문에 신경해부학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시험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왜 멈추는지 알고 싶었다.
왜 어떤 방법을 쓰면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책을 다시 펼쳤을 때 예전에는 지나쳤던 구조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Putamen은 더 이상 시험에 나오는 핵의 이름이 아니었다.
Substantia nigra는 단순한 검은색 구조가 아니었다.
Globus pallidus, subthalamic nucleus, thalamus, supplementary motor area도 마찬가지였다.
그 구조들은 내가 걷고, 멈추고, 다시 움직이는 과정에 참여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부터 신경해부학을 구조의 목록이 아니라 움직임의 이야기로 보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도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먼저 구조를 외우지 않을 것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부터 출발할 것이다.
왜 첫발이 어렵나.
왜 계단은 오히려 쉬울 때가 있나.
왜 시각적인 선이나 리듬이 움직임을 다시 만들어주나.
왜 파킨슨병에서는 큰 힘이 남아 있는데도 자동적인 동작이 무너지나.
왜 이상운동증이 생기고, 왜 떨림은 또 다른 회로와 연결되나.
그 질문을 하나씩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운동피질을 만나고, 기저핵을 만나고, 소뇌와 뇌간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가 다시 배운 신경해부학은 그런 공부였다.
신경해부학은 뇌 구조의 이름을 외우는 공부가 아니다.
내가 왜 움직이고, 왜 멈추고, 왜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를 회로로 이해하는 공부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회로를 책에서만 찾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매일 경험하는 움직임에서부터 찾아가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