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1부 — 몸을 움직인다는 것
다리에 힘이 있는데도 첫발이 안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 문제는 근육보다, 움직임을 선택하고 시작하는 회로에 있을 수 있습니다.
1부. 몸을 움직인다는 것
나는 파킨슨병에 걸린 뒤 이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평지에서는 첫발이 떨어지지 않는데 계단 앞에서는 발이 올라간다.
좁은 문 앞에서는 몸이 멈추는데, 바닥에 선 하나를 그어주면 그 선을 넘으며 다시 걸을 수 있다.
가만히 서서 출발하려고 하면 어렵지만, 제자리에서 몇 번 발을 옮긴 뒤에는 앞으로 나갈 때가 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단순한 설명으로는 부족해진다.
“근육이 약해서 그렇다.”
그렇다면 계단도 못 올라야 한다.
“다리가 마비되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바닥의 선 하나가 움직임을 되살릴 수는 없어야 한다.
내 다리에는 힘이 남아 있다.
문제는 힘을 만드는 것보다 그 힘을 언제, 어떻게 꺼내 쓰느냐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 질문에서 운동 신경해부학이 시작된다.
1장. 움직임은 명령 하나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흔히 뇌가 근육에 명령을 보내면 몸이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큰 틀에서는 맞다.
대뇌의 운동피질에서 시작한 신호는 뇌간과 척수를 지나 말초신경으로 전달되고, 결국 근육을 수축시킨다.
이 경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피질척수로, 즉 corticospinal tract다.
그래서 운동피질이나 피질척수로가 크게 손상되면 근력이 떨어지고 마비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파킨슨병의 핵심적인 문제는 보통 이 길이 끊어지는 데 있지 않다.
명령을 전달하는 주된 길은 남아 있는데도 움직임을 시작하고 크기를 조절하고 자동적으로 이어가는 과정이 어려워진다.
여기에서 중요한 구조가 등장한다.
기저핵이다.
기저핵은 근육에 직접 명령을 내리는 마지막 운동신경이 아니다.
오히려 여러 움직임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지, 어느 정도 크기로 시작할지, 불필요한 움직임은 얼마나 억제할지를 조절하는 회로에 가깝다.
그래서 기저핵의 기능이 흔들리면 힘 자체보다 움직임의 선택과 시작이 이상해질 수 있다.
2장. 나는 움직이고 싶은데 몸이 바로 움직이지 않는다
의자에서 일어나 걷는 아주 평범한 동작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보통 이것을 하나의 행동이라고 느낀다.
하지만 뇌에서는 여러 과정이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일어날 것인지 결정한다.
몸의 중심을 앞으로 옮긴다.
다리에 힘을 준다.
균형을 조절한다.
첫발을 선택한다.
보폭과 속도를 결정한다.
걷기 시작한 뒤에는 매 걸음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아도 동작이 이어진다.
나는 파킨슨병을 겪으면서 마지막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번 걷기 시작하면 어느 정도 걸을 수 있는데, 시작 자체가 어려울 때가 있다.
즉 움직일 능력과 움직임을 시작하는 능력은 완전히 같은 것이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파킨슨병의 보행을 단순한 근력저하로 오해하기 쉽다.
3장. 운동피질은 혼자 움직이지 않는다
운동피질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혼자 결정하지 않는다.
움직임이 만들어지기 전에 여러 회로가 운동피질의 활동을 조정한다.
기저핵 회로가 있고, 소뇌 회로가 있고, 감각정보가 들어오고, 뇌간의 자세와 보행 관련 회로가 함께 작동한다.
간단히 표현하면 운동피질은 명령을 내리지만, 그 명령이 언제 얼마나 자연스럽게 나갈지를 주변 회로들이 계속 조정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이것을 오케스트라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고 느꼈다.
근육은 악기다.
운동피질은 연주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연주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박자와 강약과 시작 순서를 맞춰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파킨슨병에서는 악기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연주의 시작과 흐름을 조율하는 부분이 흔들리는 것에 더 가깝다.
4장. 왜 작은 동작이 점점 작아지는가
파킨슨병의 대표적인 운동증상 가운데 하나는 bradykinesia다.
보통 서동이라고 번역하지만 단순히 느리다는 뜻만으로는 부족하다.
움직임의 속도뿐 아니라 크기와 반복의 유지도 문제가 된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크게 움직이다가 반복하면서 동작이 점점 작아질 수 있다.
글씨가 점점 작아지는 micrographia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걷기에서는 보폭이 줄어든다.
팔 흔들림이 작아진다.
동작을 시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것은 근육이 매번 약해져서가 아니다.
뇌가 움직임의 적절한 크기를 자동으로 설정하고 유지하는 과정에 문제가 생긴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파킨슨병에서는 때때로 “더 크게”, “한 걸음 크게” 같은 외부 지시가 실제 움직임을 바꾸기도 한다.
몸이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 조절이 흔들리기 때문에 의식적인 명령이 그 일부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다.
5장. 자동운동과 의식적인 운동은 다르다
이 차이는 파킨슨병에서 매우 흥미롭다.
우리는 정상적으로 걸을 때 매번 생각하지 않는다.
오른발.
왼발.
보폭 50cm.
팔을 흔들자.
이렇게 계산하며 걷지 않는다.
걷기가 시작되면 상당 부분은 자동적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자동화된 움직임이 어려워질 때 외부의 목표를 주면 움직임이 다시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바닥의 선을 넘는다.
계단 한 칸을 밟는다.
음악의 박자에 맞춘다.
누군가 “하나, 둘” 하고 리듬을 준다.
이 순간 움직임은 단순한 자동보행에서 목표가 있는 의식적 움직임으로 바뀐다.
나는 이 차이가 내가 평지보다 계단에서 오히려 편할 때가 있는 이유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계단에는 매 걸음의 목표가 눈앞에 있다.
발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가 명확하다.
반면 넓은 평지에는 그런 외부 목표가 없다.
뇌가 스스로 보폭과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파킨슨병에서는 바로 그 자동 생성 과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6장. 선 하나가 왜 발을 움직이게 하는가
Freezing이 생겼을 때 바닥의 선이나 물체를 넘으려 하면 갑자기 발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처음 경험하면 이상하게 느껴진다.
방금 전까지 한 발도 못 움직였는데 선 하나가 생겼다고 다리가 움직인다.
하지만 신경해부학적으로 보면 중요한 힌트가 있다.
외부 시각정보가 움직임을 위한 새로운 목표를 제공한 것이다.
자동적으로 “걷기”를 생성하려던 상황에서
**“저 선을 넘는다”**라는 구체적인 동작으로 바뀐다.
그 과정에서는 시각피질, 두정엽, 전운동영역 등 외부 감각정보를 이용하는 회로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즉 하나의 회로가 잘 작동하지 않을 때 다른 회로를 이용해 우회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보상회로라고 이해하기 시작했다.
7장. 계단이 평지보다 쉬울 수 있다는 역설
파킨슨병을 모르는 사람에게
“평지는 어려운데 계단은 더 쉽다.”
라고 말하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계단이 더 많은 근력과 균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 점이 중요한 단서다.
계단을 오를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필요한 근력과 기본적인 운동 경로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평지에서 자동적으로 걸음을 생성하고 이어가는 과정에 있을 수 있다.
계단은 매번 다음 목표가 명확하다.
높이가 있고, 모서리가 있고, 시각적으로 어디에 발을 놓을지가 분명하다.
그 결과 자동운동에 덜 의존하고 외부 목표를 이용한 움직임으로 전환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계단을 오를 때마다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다리가 못 움직이는 것이 아니구나.”
“움직임을 꺼내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구나.”
이 차이는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8장. 파킨슨병에서 남아 있는 회로를 찾는다는 것
파킨슨병에서는 모든 운동회로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경로는 어려워지고, 어떤 경로는 상대적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cueing이 가능하다.
시각적인 선을 이용한다.
리듬을 이용한다.
큰 동작을 의식한다.
방향을 잠깐 바꾼다.
제자리걸음을 한 뒤 출발한다.
이런 방법은 병을 없애는 치료가 아니다.
하지만 남아 있는 회로를 이용해 움직임을 끌어내는 전략이 될 수 있다.
나는 파킨슨병을 겪으면서 운동을 단순히 근육훈련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운동은 때로 남아 있는 신경회로를 찾고 사용하는 연습이기도 하다.
1부를 마치며
나는 예전에는 움직임을 근육과 운동신경의 문제로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파킨슨병을 앓으면서 움직임에는 그보다 앞선 과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엇을 할지 선택한다.
움직임의 크기를 정한다.
시작한다.
자동적으로 이어간다.
불필요한 움직임은 억제한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른 회로를 불러온다.
이 모든 과정이 맞물려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그래서 이제 나는 첫발이 안 떨어질 때 단순히
“다리가 안 움직인다.”
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다르게 질문한다.
“지금 어떤 운동회로가 막혀 있는가.”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을 더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다른 회로를 이용할 수 있는가.”
그 질문을 따라가면 다음에 만나야 할 구조가 분명해진다.
바로 기저핵이다.
움직임을 직접 만드는 근육보다 먼저,
움직임을 선택하고 허용하고 크기를 조절하는 시스템.
2부에서는 그 기저핵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