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부록 5장 — 루이소체치매(DLB)
같은 α-synuclein인데 왜 기억과 지각이 먼저 흔들리는가. 병리가 어디까지 퍼졌는가가 임상 모습을 결정한다.
부록 5장. 루이소체치매(DLB)
— 같은 α-synuclein인데 왜 기억과 지각이 먼저 흔들리는가
파킨슨병과 루이소체치매를 공부하다 보면 이상한 점을 하나 만나게 된다.
둘 다 α-synuclein이 핵심 병리 단백질이다.
둘 다 루이소체가 나타날 수 있다.
둘 다 파킨슨성 운동증상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임상 모습은 같지 않다.
파킨슨병에서는 대개 서동, 경직, 떨림 같은 운동증상이 먼저 앞에 나온다.
반면 루이소체치매, DLB에서는 인지기능 변화, 주의력의 심한 변동, 구체적인 환시, REM 수면행동장애 같은 증상이 일찍 두드러질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같은 단백질이 관련되어 있는데 왜 하나는 운동이 먼저 무너지고, 다른 하나는 생각과 지각이 먼저 흔들리는가.
답은 다시 병리가 어디에 얼마나 퍼져 있는가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림. (왼쪽) 파킨슨병과 DLB의 α-synuclein 병리 분포 비교. (오른쪽) 인지증상과 운동증상의 시간관계에 따른 DLB와 PDD의 임상적 구분.
1. DLB는 무엇인가
DLB는 Dementia with Lewy Bodies, 루이소체치매다.
치매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과는 임상 모습이 다르다.
DLB에서는 단순히 기억력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보다 주의력과 각성 수준이 크게 변하고, 시각적 환각이 나타나고, 파킨슨성 운동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환자나 가족은 “어제는 괜찮았는데 오늘은 사람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느낄 수 있다.
이 **변동성(fluctuation)**이 중요한 특징이다.
2. 인지기능이 하루 안에서도 달라질 수 있다
알츠하이머병에서는 대체로 기억력 저하가 서서히 진행하는 모습이 중심이 된다.
DLB에서는 조금 다를 수 있다.
어떤 시간에는 대화가 잘 되고 주변 상황도 정확히 이해한다.
그런데 몇 시간 뒤에는 멍해지고, 집중하지 못하고,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수 있다.
다시 시간이 지나면 상당히 좋아지기도 한다.
이것을 단순한 피곤함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DLB에서는 주의와 각성을 유지하는 신경 네트워크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3. 왜 환시가 그렇게 특징적일까
DLB에서 매우 중요한 증상 가운데 하나가 반복적이고 구체적인 환시다.
단순히 “뭔가 그림자가 보인다.” 정도가 아니라 사람, 아이, 동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보는 경우가 있다.
환자는 그것을 매우 실제처럼 경험할 수 있다.
어떤 환자는 자신이 본 것이 이상하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어떤 경우에는 완전히 현실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4. 보는 것은 눈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본다’는 경험은 뇌가 만든다.
망막에서 들어온 정보는 후두엽의 시각피질로 전달된다.
그 뒤 물체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익숙한 사람인지, 위험한 것인지를 여러 대뇌 네트워크가 해석한다.
또 주의와 각성 시스템이 “지금 들어온 정보가 실제 외부 자극인가”를 계속 확인한다.
DLB에서는 이런 시각처리와 주의 네트워크가 함께 흔들릴 수 있다.
그 결과 뇌가 불완전한 시각정보를 잘못 해석하거나, 내부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외부의 실제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환시는 단순히 눈의 문제가 아니라 지각 네트워크 전체의 문제다.
5. REM 수면행동장애가 중요한 이유
DLB에서는 REM sleep behavior disorder, REM 수면행동장애가 흔히 동반된다.
정상적인 REM 수면에서는 꿈을 꾸는 동안 대부분의 골격근이 억제된다.
그래서 꿈속에서 뛰어도 실제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근육 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꿈속 행동이 실제 몸으로 나타날 수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하거나, 침대에서 떨어질 수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증상이 인지장애나 파킨슨증보다 훨씬 먼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는 α-synuclein 병리가 운동피질보다 먼저 뇌간의 수면조절 회로를 침범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6. 파킨슨성 운동증상도 나타난다
DLB에서도 서동, 경직, 보행장애, 자세불안정 같은 파킨슨성 운동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DLB 역시 파킨슨증후군의 중요한 감별질환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파킨슨병과 비교하면 안정시 떨림이 덜 두드러지고, 양측성 또는 축성 증상이 비교적 일찍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레보도파에 반응할 수 있지만 전형적인 파킨슨병만큼 뚜렷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또 약물을 올렸을 때 환시나 혼돈이 악화될 가능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7. 가장 헷갈리는 질문 — DLB와 파킨슨병 치매는 다른 병인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나온다.
파킨슨병 환자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치매가 생길 수 있다.
이를 Parkinson’s disease dementia, PDD라고 한다.
그런데 PDD와 DLB의 병리는 상당 부분 겹친다.
둘 다 α-synuclein과 Lewy body 병리가 중요하다.
그렇다면 둘을 어떻게 나누는가.
임상에서는 주로 시간 순서를 이용한다.
8. ‘1년 규칙’
전통적으로 DLB와 PDD를 구분할 때 1-year rule, 즉 1년 규칙을 사용한다.
인지장애가 파킨슨성 운동증상보다 먼저 나타나거나, 운동증상과 거의 동시에 나타나거나, 운동증상이 시작된 뒤 1년 이내에 뚜렷하게 나타났다면 임상적으로 DLB를 생각한다.
반면 파킨슨병이 수년 동안 뚜렷하게 존재한 뒤 치매가 발생하면 PDD라고 부른다.
이 기준은 두 질환의 병리가 완전히 다르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두 질환이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임상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만든 기준에 가깝다.
9. 병리 핵심은 다시 α-synuclein이다
DLB 역시 대표적인 synucleinopathy다.
α-synuclein이 뉴런 안에 비정상적으로 축적되면서 Lewy body와 Lewy neurite를 형성한다.
파킨슨병에서도 같은 병리를 볼 수 있다.
차이는 병리의 분포다.
전형적인 파킨슨병 초기에는 흑질과 뇌간의 병리가 운동증상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DLB에서는 병리가 대뇌 변연계와 신피질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지, 주의, 지각, 행동 문제가 일찍 나타날 수 있다.
10. 같은 단백질, 다른 분포
이 점은 지금까지 부록에서 반복해서 나타난다.
MSA와 파킨슨병은 둘 다 α-synuclein과 관련된다.
그러나 MSA에서는 주로 희소돌기아교세포에 축적된다.
파킨슨병과 DLB에서는 주로 뉴런에 축적된다.
그런데 파킨슨병과 DLB에서도 분포와 침범 정도가 다르다.
즉 병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단백질인가만이 아니다.
어느 세포에 쌓이는가.
어느 뇌 영역에 먼저 쌓이는가.
얼마나 넓게 퍼지는가.
가 함께 중요하다.
11. 아세틸콜린도 중요하다
DLB에서는 도파민계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콜린성 신경계의 변화가 인지와 주의 장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저전뇌의 콜린성 신경계는 주의, 기억, 인지 처리에 중요하다.
이 회로가 손상되면 주의력과 인지기능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DLB 치료에서는 일부 환자에서 콜린에스터라제 억제제가 인지와 행동 증상 관리에 사용된다.
이것은 DLB를 단순한 도파민 질환으로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12. 자율신경 증상도 흔하다
DLB에서도 기립성 저혈압, 변비, 배뇨장애, 발한 이상 같은 자율신경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는 같은 synucleinopathy 계열인 파킨슨병이나 MSA와 겹치는 부분이다.
하지만 MSA처럼 심한 자율신경부전이 매우 일찍 질환의 중심에 오는 양상과는 차이가 있다.
결국 한 증상의 존재 여부보다 어떤 증상이 언제, 얼마나 강하게 나타나는가가 중요하다.
13. 왜 항정신병약에 민감할 수 있는가
DLB에서 매우 중요한 임상적 문제 중 하나가 항정신병약에 대한 과민반응이다.
환시나 망상이 있다고 해서 도파민 수용체를 강하게 차단하는 약을 사용하면 경직과 서동이 급격히 심해지거나, 의식과 전신상태가 크게 악화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DLB 환자의 행동·정신 증상을 치료할 때는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이것은 DLB에서 이미 도파민계 운동회로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환시는 줄였지만 운동회로를 더 강하게 막아 버릴 수 있다.
14. 환시가 있다고 모두 DLB는 아니다
여기서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파킨슨병 환자에서도 환시가 나타날 수 있다.
약물, 감염, 수면 부족, 섬망, 인지기능 저하 등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환시 하나만으로 DLB를 진단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전체 패턴이다.
인지 변동, 반복적인 구체적 환시, REM 수면행동장애, 파킨슨증, 자율신경 증상 등을 함께 본다.
15.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같이 있을 수도 있다
DLB의 병리에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혼합병리다.
일부 환자에서는 α-synuclein 병리뿐 아니라 아밀로이드-β, tau 같은 알츠하이머병 병리가 함께 존재할 수 있다.
이 경우 임상양상과 진행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것은 실제 노년기 신경퇴행성 질환이 교과서처럼 하나의 병리만 깔끔하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람의 뇌 안에 여러 퇴행성 병리가 겹칠 수 있다.
16. 영상은 어떤 도움을 줄까
MRI는 주로 다른 구조적 질환을 배제하고 뇌 위축 양상을 보는 데 사용된다.
하지만 DLB를 MRI 하나로 확진할 수는 없다.
상황에 따라 도파민 신경계 영상이나 심장 교감신경 기능을 보는 검사, 수면검사 등이 진단을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상양상이다.
인지 변동과 환시가 언제 시작되었는가.
파킨슨증과의 시간관계는 어떠한가.
REM 수면행동장애가 있는가.
이런 시간의 흐름이 중요하다.
17. DLB를 보면 ‘시간 순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DLB와 PDD는 병리적으로 매우 가까울 수 있다.
그런데 임상적으로는 증상의 시간 순서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이 사실은 내가 파킨슨병을 공부하면서 계속 중요하게 느낀 것과도 연결된다.
신경계 질환에서는 어떤 증상이 있는가만큼 어떤 증상이 먼저 나타났는가가 중요하다.
같은 환시라도 운동증상이 시작되기 전인지, 동시에 나타났는지, 파킨슨병을 10년 앓은 뒤 나타났는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병리로 다시 보는 DLB와 파킨슨병
파킨슨병과 DLB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진 병이 아니다.
둘 다 α-synuclein이 뉴런 안에 축적되는 synucleinopathy다.
둘 다 Lewy body 병리가 나타날 수 있다.
둘 다 운동증상과 비운동증상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파킨슨병에서는 초기의 nigrostriatal 회로 침범이 임상적으로 앞에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DLB에서는 대뇌피질과 변연계, 주의·지각 네트워크까지 비교적 일찍 영향을 받으면서 인지 변동, 환시, 행동 변화가 앞에 나올 수 있다.
결국 같은 병리 단백질이라도 어디까지 퍼졌는가가 임상 모습을 바꾼다.
DLB를 알면 파킨슨병이 더 잘 보인다
DLB와 비교하면 파킨슨병을 조금 다르게 볼 수 있다.
파킨슨병은 운동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결코 운동회로에만 머무르는 질환은 아니다.
질환이 진행하면서 병리가 더 넓은 신경 네트워크에 영향을 주면 인지, 수면, 지각, 자율신경 문제까지 나타날 수 있다.
DLB는 그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는 질환이다.
그리고 DLB와 파킨슨병 치매를 비교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α-synuclein 병리가 어느 회로에서 시작해 어떤 순서로 퍼졌는가.
그 순서가 환자의 증상 순서를 만든다.
부록 5장 한 줄 정리
루이소체치매(DLB)는 α-synuclein이 뉴런에 축적되는 synucleinopathy로, 병리가 대뇌피질과 변연계·주의 및 지각 네트워크까지 일찍 침범하면서 인지 변동, 반복적 환시, REM 수면행동장애와 파킨슨증이 함께 나타날 수 있으며, 파킨슨병 치매와의 구분에는 인지증상과 운동증상의 시간관계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