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2부 — 기저핵, 움직임을 선택하는 시스템
기저핵은 근육을 직접 움직이는 마지막 명령선이 아닙니다. 여러 움직임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어느 정도 크기로 시작하고, 무엇을 억제할지를 조절하는 깊은 회로입니다.
2부. 기저핵 — 움직임을 선택하는 시스템
나는 한동안 파킨슨병을 이렇게 이해했다.
도파민이 부족해서 몸이 느려진다.
틀린 설명은 아니다.
하지만 오래 몸을 관찰하다 보니 질문이 하나 더 생겼다.
다리에 힘은 남아 있는데 왜 첫발이 안 떨어질까.
한번 걷기 시작하면 걸을 수 있는데 왜 출발이 어려울까.
평지에서는 보폭이 작아지는데 계단 앞에서는 갑자기 발이 커질까.
이 질문은 결국 도파민 하나가 아니라 도파민이 작용하는 회로를 보게 만들었다.
그 중심에 기저핵이 있다.
9장. 기저핵은 어디에 있는가
기저핵은 대뇌피질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여러 핵의 집합이다.
대표적으로 **선조체(striatum), 담창구(globus pallidus), 시상하핵(STN), 흑질(substantia nigra)**이 운동회로의 중심을 이룬다.
선조체는 다시 **미상핵(caudate)**과 **조가비핵(putamen)**으로 나눌 수 있다.
운동을 이야기할 때 특히 중요한 것은 putamen이다.
아래 그림은 이 구조들의 위치 관계를 단순화한 교육용 아틀라스다.
처음 이름을 보면 복잡해 보인다.
하지만 회로의 방향만 잡으면 의외로 단순해진다.
대뇌피질에서 정보가 들어오고 → 선조체가 받고 → 기저핵 내부에서 선택과 억제가 조절되고 → GPi/SNr을 통해 시상으로 나가고 → 다시 운동피질로 돌아간다.
기저핵은 닫힌 고리처럼 계속 피질과 대화한다.
10장. 선조체 — 움직임이 들어오는 입구
대뇌피질에서 만들어진 운동 관련 정보는 기저핵으로 들어온다.
그 중요한 입구가 선조체다.
운동회로에서는 putamen이 특히 중요하다.
여기에는 지금 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감각, 습관화된 운동, 이전 동작의 맥락 같은 여러 정보가 함께 들어온다.
나는 선조체를 움직임 후보가 들어오는 접수창구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웠다.
걷기 시작하기.
몸을 돌리기.
의자에서 일어나기.
손을 뻗기.
여러 행동의 가능성이 동시에 존재하지만 우리는 그중 하나를 선택해 실행한다.
기저핵은 바로 그 선택 과정에 관여한다.
그래서 기저핵의 문제가 생기면 완전한 마비가 없어도 움직임을 꺼내는 과정이 어려워질 수 있다.
11장. 기저핵의 출력은 기본적으로 브레이크에 가깝다
여기서 처음에는 조금 이상한 사실을 만난다.
기저핵의 주요 출력핵인 GPi와 SNr은 시상을 지속적으로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쉽게 말하면 아무 움직임이나 마음대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브레이크를 걸고 있는 셈이다.
움직임을 만들려면 필요한 동작에 대해서는 이 브레이크를 적절히 풀어야 한다.
반대로 불필요한 움직임은 계속 억제해야 한다.
그래서 기저핵의 역할을 단순히 가속페달이나 브레이크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더 정확하게는
필요한 움직임은 통과시키고, 경쟁하는 움직임은 억제하는 선택 시스템에 가깝다.
이 관점에서 보면 파킨슨병의 서동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근육이 힘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운동 프로그램이 충분히 해제되지 못하는 것이다.
12장. 직접경로와 간접경로
기저핵을 배우면 반드시 직접경로와 간접경로가 나온다.
처음에는 화살표가 너무 많아서 외우기 힘들다.
하지만 핵심 질문은 하나다.
“결국 시상을 얼마나 억제할 것인가?”
직접경로는 필요한 움직임에 대해 GPi/SNr의 억제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러면 시상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지고 운동피질을 활성화하기 쉬워진다.
간접경로는 반대로 경쟁하거나 불필요한 움직임을 억제하는 방향에 기여한다.
STN은 이 과정에서 GPi/SNr의 출력을 높이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 그림을 외우기보다 필요한 운동의 문을 열고, 경쟁 운동의 문은 닫는 시스템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실제 움직임과 연결하기 쉽다.
13장. 흑질의 도파민은 무엇을 하는가
파킨슨병에서 가장 많이 듣는 구조는 흑질이다.
특히 substantia nigra pars compacta, SNc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감소한다.
이 신경세포들은 선조체로 도파민을 보낸다.
도파민은 단순히 운동을 ‘켜는’ 물질은 아니다.
직접경로의 D1 계열 뉴런과 간접경로의 D2 계열 뉴런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면서, 결과적으로 필요한 움직임이 선택되고 실행되기 쉬운 방향으로 회로의 균형을 조절한다.
그래서 도파민이 부족해지면 단순히 근육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다.
기저핵의 출력이 움직임을 지나치게 억제하는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
그 결과 운동피질로 돌아가는 신호가 충분한 크기와 타이밍을 만들기 어려워진다.
나는 이것을 몸에서는 이렇게 느꼈다.
움직일 수는 있는데, 움직임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14장. 왜 동작의 크기까지 작아지는가
파킨슨병의 bradykinesia를 단순히 ‘느림’이라고만 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걸음은 짧아진다.
글씨는 작아진다.
팔 흔들림은 줄어든다.
반복 동작은 점점 작아지기도 한다.
이 현상은 기저핵이 운동의 선택뿐 아니라 운동의 크기와 활력(vigor)을 설정하는 과정에도 관여한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그래서 외부에서
“한 걸음 크게.”
“팔을 크게 흔들어.”
라고 의식적으로 지시하면 잠시 동작의 크기가 커질 수 있다.
자동으로 설정되던 크기를 의식적인 목표가 대신해주는 셈이다.
이것은 내게 아주 중요한 힌트였다.
작게 움직이는 것이 근력이 부족해서만은 아니다.
움직임의 크기를 내부에서 자동으로 설정하는 회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15장. 왜 첫발이 가장 어려운가
나는 걷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디로 갈지도 안다.
다리에 힘도 있다.
그런데 발이 붙는다.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의도’와 ‘운동 프로그램의 실행’을 구분해야 한다.
전전두엽과 운동연합영역에서 걷겠다는 계획이 만들어져도 실제 보행을 시작하려면 기저핵, 보조운동영역, 뇌간 보행회로 등이 적절한 타이밍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파킨슨병에서는 이 내부 시작 신호가 약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이미 시작된 동작보다 새로운 동작으로 전환하는 순간이 더 어려울 때가 있다.
출발할 때.
방향을 바꿀 때.
문을 통과할 때.
좁은 공간에 들어갈 때.
여러 운동 프로그램이 경쟁하거나 전환되어야 하는 순간에 freezing이 두드러질 수 있다.
기저핵은 바로 이런 선택과 전환의 한가운데에 있다.
16장. 그런데 왜 선 하나가 다시 움직이게 하는가
기저핵 회로가 어렵다면 모든 움직임이 어려워야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바닥에 선을 그으면 발이 나온다.
박자를 주면 다시 걷는다.
계단에서는 오히려 움직임이 좋아질 수 있다.
이것은 뇌가 하나의 길만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외부 시각 cue나 리듬은 두정엽, 전운동영역, 소뇌 등 외부 감각정보를 이용하는 네트워크의 참여를 늘릴 수 있다.
그렇다고 기저핵을 완전히 ‘우회한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부에서 자동적으로 만들어야 했던 신호를 외부 목표와 감각정보가 보조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그래서 cue는 단순한 요령이 아니다.
남아 있는 다른 회로를 활용하는 신경학적 전략이다.
2부를 마치며
기저핵을 공부하기 전에는 파킨슨병의 움직임을 주로 결과로 보았다.
느리다.
첫발이 안 나온다.
보폭이 작다.
몸이 굳는다.
그런데 기저핵을 이해하면서 결과 뒤의 질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움직임을 선택할 것인가.
그 움직임의 브레이크를 얼마나 풀 것인가.
얼마나 큰 크기로 실행할 것인가.
다른 움직임으로 언제 전환할 것인가.
도파민은 이 시스템의 한가운데에서 회로의 균형을 조절한다.
그래서 파킨슨병은 단순히 ‘움직임이 느려지는 병’보다 훨씬 흥미롭다.
움직임을 선택하고 시작하고 자동화하는 시스템이 흔들리는 병이라고 바라보면 내가 경험했던 많은 현상이 하나의 회로 안에서 연결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음 질문이 남는다.
왜 어떤 순간에는 발이 완전히 바닥에 붙어버리는가.
다음에는 freezing과 보행회로를 따라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