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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 · 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8부 — 운동만의 병이 아니다

잠, 장, 소변, 혈압, 기분, 생각. 파킨슨병은 손과 발만의 병이 아니다.

8부. 운동만의 병이 아니다

— 파킨슨병은 왜 잠, 장, 소변, 기분과 생각까지 건드리는가

파킨슨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움직임이다.

손이 떨린다.

몸이 굳는다.

동작이 느려진다.

걸음이 짧아지고 첫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오랫동안 파킨슨병은 운동의 병처럼 설명되어 왔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고,

기저핵 회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움직임에 문제가 생기는 병.

틀린 설명은 아니다.

하지만 파킨슨병을 오래 들여다보면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들이 너무 많다.

잠이 달라진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기도 한다.

변비가 생긴다.

혈압이 흔들린다.

소변 문제가 생긴다.

통증과 피로가 나타난다.

기분과 의욕이 달라질 수 있다.

생각의 속도와 주의력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증상은 손 떨림보다 먼저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질문이 달라진다.

파킨슨병은 정말 운동만의 병인가?

아니다.

파킨슨병은 흑질 하나의 병도 아니고,

도파민 하나의 병도 아니다.

더 넓게 보면

여러 신경계가 시간에 따라 함께 영향을 받는 질환

이라고 보는 편이 실제 환자의 몸을 훨씬 잘 설명한다.


1. 흑질만 보면 파킨슨병의 절반밖에 보이지 않는다

운동증상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구조 가운데 하나가 **흑질 치밀부(substantia nigra pars compacta)**다.

여기에서 만들어지는 도파민이 선조체로 전달되고,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서 기저핵 운동회로가 흔들린다.

그래서 서동과 경직 같은 대표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파킨슨병의 변화가 흑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뇌간의 여러 핵,

자율신경계,

후각계,

변연계,

대뇌피질,

말초 자율신경계까지 다양한 영역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 도파민만 변하는 것도 아니다.

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

아세틸콜린

같은 다른 신경전달물질 체계도 관련된다.

이렇게 보면 파킨슨병에서 운동 이외의 증상이 많은 이유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2. 운동증상이 나타나기 전부터 시작될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일부 비운동 증상은 손 떨림이나 서동 같은 전형적인 운동증상보다 수년 앞서 나타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이

후각 저하,

변비,

REM 수면행동장애 등이다.

물론 이런 증상이 있다고 모두 파킨슨병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변비나 후각 저하는 매우 흔한 증상이다.

따라서 이것 하나만 가지고 파킨슨병을 진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미 파킨슨병이 발병한 환자의 과거를 돌아보면,

운동증상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이런 변화가 존재했던 경우가 적지 않다.

이것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파킨슨병의 병리 과정이

손이 떨리기 시작한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은 아닐 수 있다는 뜻이다.


3. 냄새를 잃는 것도 신경해부학이다

후각 저하는 파킨슨병에서 흔한 비운동 증상 가운데 하나다.

냄새와 걷기가 무슨 관계가 있을까.

겉으로 보면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파킨슨병을 신경계 전체의 질환으로 보면 이상하지 않다.

후각 정보를 처리하는 구조도 파킨슨병의 병리 변화와 관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파킨슨병을 이해할 때 아주 중요한 단서를 준다.

병은 반드시

흑질 → 운동장애

라는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신경계가 서로 다른 시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4. 장과 뇌는 생각보다 가까이 연결되어 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변비는 매우 흔하다.

그저 움직임이 줄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운동량 감소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위장관 운동은 자율신경계와 장신경계의 조절을 받는다.

파킨슨병에서는 이런 신경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장의 움직임 자체가 느려질 수 있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더 생긴다.

장은 단순히 불편한 장기가 아니다.

레보도파가 흡수되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통로다.

약을 먹어도 위에서 오래 머물면 소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진다.

그러면 약효 시작도 늦어진다.

같은 약을 같은 시간에 먹었는데도

어떤 날은 빨리 듣고,

어떤 날은 늦게 듣고,

어떤 날은 제대로 ON이 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여기에 있을 수 있다.


5. 위장은 약효 곡선의 일부다

파킨슨병 약효를 공부하면서 나는 점점 약만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레보도파 한 알을 먹었다고 바로 뇌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다.

위에서 소장으로 내려가야 한다.

소장에서 흡수되어야 한다.

혈액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혈액뇌장벽을 통과해야 한다.

그제야 뇌의 도파민계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위 배출이 느려지거나 불규칙하면

약효 곡선도 불규칙해질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 장 문제와 운동 변동이 서로 완전히 별개의 일이 아닌 이유다.

장은 약효 곡선의 앞부분에 놓여 있다.


6. 단백질이 약효와 관계되는 이유

레보도파는 아미노산과 구조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장에서 흡수되고 혈액뇌장벽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큰 중성 아미노산들과 운반체를 공유한다.

따라서 일부 환자에서는 단백질이 많은 식사와 레보도파 복용 시간이 겹치면 약효가 늦어지거나 약해지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다.

모든 환자가 똑같이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약효 변동이 심한 환자에서는 식사 시간과 약효의 관계를 살펴볼 가치가 있다.

이것 역시 중요한 점을 보여준다.

파킨슨병에서 약효는

뇌만의 문제가 아니다.

위장관에서 시작해서 혈액과 뇌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의 결과다.


7. 소변도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파킨슨병에서는 빈뇨,

절박뇨,

야간뇨 같은 배뇨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방광은 단순히 차면 비우는 주머니가 아니다.

배뇨 역시 복잡한 신경회로의 통제를 받는다.

대뇌,

기저핵,

뇌간,

척수,

말초 자율신경계가 함께 관여한다.

정상 상태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순간에 방광이 수축하지 않도록 상위 신경계가 조절한다.

이 조절 회로가 영향을 받으면 방광의 과활동과 같은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파킨슨병 환자가

“소변이 너무 자주 마렵다.”

고 말할 때,

그것을 단순히 나이나 전립선 문제만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다른 비뇨기 질환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하지만,

파킨슨병의 신경회로 변화 자체도 한 원인이 될 수 있다.


8. 혈압을 조절하는 것도 신경계다

누워 있다가 갑자기 일어서면 혈액은 중력 때문에 아래로 쏠린다.

정상적인 몸은 이를 즉시 감지하고

혈관을 수축시키고,

심박출을 조절해

뇌로 가는 혈류를 유지한다.

이 과정에는 자율신경계가 중요하다.

파킨슨병에서는 일부 환자에서 이러한 조절이 떨어져 기립성 저혈압이 나타날 수 있다.

일어설 때

어지럽거나,

눈앞이 캄캄하거나,

힘이 빠지거나,

심하면 실신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증상이 단순한 운동장애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이 “걷기 어렵다”고 말해도 그 원인은 하나가 아닐 수 있다.

서동 때문일 수도 있고,

동결 때문일 수도 있고,

혈압 저하 때문에 힘이 빠진 것일 수도 있다.

같은 ‘못 걷는다’라는 표현 안에 서로 다른 회로 문제가 숨어 있을 수 있다.


9. 잠을 자는 동안에도 파킨슨병은 존재한다

잠은 뇌가 꺼져 있는 시간이 아니다.

수면 역시 매우 복잡한 신경회로가 만들어 내는 상태다.

파킨슨병에서는

잠들기 어려움,

자주 깨는 현상,

야간 운동장애,

주간 졸림 등 여러 수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중 특별히 주목받는 것이 **REM 수면행동장애(REM sleep behavior disorder)**다.

정상적인 REM 수면에서는 꿈을 꾸더라도 대부분의 골격근이 억제되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꿈속 행동을 실제 몸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거나,

발길질을 하는 식이다.

이 현상은 뇌간의 수면조절 회로가 파킨슨병과 관련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10. 왜 밤과 낮의 몸이 다를까

파킨슨병 환자의 하루를 보면 증상이 일정하지 않다.

낮과 밤이 다르고,

잠을 얼마나 잤는지에 따라서도 몸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

수면 부족은

주의력,

운동 수행,

피로,

통증 인식,

감정 상태

모두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아침에 몸이 좋지 않다고 해서 그것을 모두 약의 용량 문제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파킨슨병에서는

약효,

수면,

자율신경,

활동량,

식사

같은 요소가 서로 얽혀 하루의 상태를 만든다.


11. 통증도 파킨슨병의 일부일 수 있다

파킨슨병과 통증을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통증은 적지 않은 환자가 경험하는 비운동 증상이다.

경직 때문에 근육과 관절이 아플 수도 있다.

디스토니아 때문에 통증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통증을 느끼고 조절하는 중추신경계 자체의 변화도 관련될 수 있다.

즉 똑같은 말초 자극이라도 뇌가 그것을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통증은

근육 문제,

관절 문제,

디스토니아,

신경병성 통증,

중추성 통증

등을 구별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12. 피로는 단순히 힘이 없는 것이 아니다

파킨슨병에서 피로는 매우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이다.

근력이 떨어졌다고만 표현하기 어렵다.

잠을 충분히 자도 피곤할 수 있다.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아도 몸이 무겁다.

이 역시 운동회로뿐 아니라

각성,

동기,

자율신경,

수면,

기분

등 여러 시스템이 함께 영향을 주기 때문일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는 하나의 증상을 하나의 구조에만 대응시키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 도파민은 움직임만 담당하지 않는다

도파민이라고 하면 우리는 쉽게 움직임부터 떠올린다.

하지만 도파민 회로는 하나가 아니다.

흑질–선조체 경로는 운동과 밀접하지만,

다른 도파민 경로들은

보상,

동기,

주의,

행동 선택

등에도 관여한다.

그래서 파킨슨병과 그 치료는 운동 이외의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의욕이 달라지거나,

보상에 대한 반응이 달라지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하려는 충동이 커질 수도 있다.

특히 일부 도파민계 약물은 민감한 환자에서 충동조절 문제와 관련될 수 있다.

이것을 단순히

“의지가 약해졌다.”

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행동을 선택하고 보상을 평가하는 신경회로가 도파민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14. 우울과 불안도 ‘마음만의 문제’가 아니다

만성질환을 오래 앓으면 누구라도 우울하거나 불안할 수 있다.

따라서 파킨슨병 환자의 우울과 불안을 모두 뇌의 병리로 설명하는 것도 옳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병 때문에 속상해서 그런 것”

이라고만 보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도파민,

세로토닌,

노르아드레날린 등 감정과 동기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 체계가 파킨슨병에서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파킨슨병의 기분 변화는

질병을 살아가는 심리적 경험과

신경계 자체의 변화가

서로 겹쳐 나타날 수 있다.


15. 생각도 느려질 수 있다

파킨슨병의 ‘느림’은 손과 발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일부 환자에서는 생각의 속도도 느려질 수 있다.

한 가지 일을 하다가 다른 일로 전환하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고,

여러 정보를 동시에 다루는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주의력이 흔들리기도 한다.

병이 진행된 일부 환자에서는 보다 뚜렷한 인지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것은 기저핵이 운동만 담당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과 연결된다.

기저핵에는 운동회로뿐 아니라

인지회로,

변연회로도 존재한다.

같은 기본 구조를 사용하면서 서로 다른 대뇌 영역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16. 환시는 어디에서 오는가

일부 파킨슨병 환자에서는 환시 같은 지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병이 오래되거나,

인지 변화가 있거나,

특정 약물의 영향을 받을 때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것 역시 단순한 도파민 부족 하나로 설명하기 어렵다.

시각정보를 해석하는 대뇌피질,

주의 시스템,

수면과 각성,

여러 신경전달물질 체계가 함께 관여할 수 있다.

그래서 파킨슨병이 진행할수록 치료의 목표도 복잡해진다.

운동기능만 좋아지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운동을 개선하는 약이

수면,

혈압,

인지,

행동,

지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같이 봐야 한다.


17. 한 사람 안에 여러 회로가 동시에 존재한다

지금까지 배운 것을 한 번 모아 보자.

손발의 느림에는

기저핵 운동회로

가 중요하다.

떨림에는

기저핵–시상–소뇌–피질의 진동 네트워크

가 관여한다.

균형과 보행에는

기저핵뿐 아니라

뇌간과 소뇌, 대뇌피질

이 함께 참여한다.

잠에는

뇌간의 수면회로

가 관여한다.

혈압과 장, 방광에는

자율신경계

가 중요하다.

기분과 동기에는

변연계와 여러 신경전달물질 회로

가 관여한다.

인지에는

전전두엽–기저핵 회로와 대뇌피질 네트워크

가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을 한 환자가 가지고 있다.

그러니 파킨슨병을 하나의 증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


몸으로 이해한 비운동 증상

신경해부학을 다시 공부하기 전에는 파킨슨병을 주로 움직임으로 평가했다.

오늘 잘 걷는가.

몸이 굳었는가.

OFF인가 ON인가.

이상운동증이 있는가.

물론 이것들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 하루를 결정하는 것은 운동기능만이 아니다.

잠을 어떻게 잤는지,

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식사와 약의 관계는 어떤지,

혈압과 피로는 어떤지,

집중력과 기분은 어떤지가

그날의 몸을 함께 만든다.

그래서 파킨슨병을 이해하려면

손과 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잠자는 뇌도 봐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자율신경도 봐야 하고, 감정과 생각을 만드는 회로도 봐야 한다.

파킨슨병은 운동의 병이지만,

운동만의 병은 아니다.

오히려 여러 신경계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질환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고 나면 환자에게 나타나는 서로 관계없어 보이던 증상들이 조금씩 하나의 그림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8부 한 줄 정리

파킨슨병은 흑질 도파민 신경세포의 소실로 시작해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 환자의 증상은 운동회로뿐 아니라 자율신경·수면·감정·인지·감각 등 여러 신경 네트워크의 변화가 함께 만들어 내는 전신적 신경계 질환으로 이해해야 한다.


다음 9부

9부 — DBS는 어디를 자극하는가

약으로 도파민을 보충하는 것만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운동 변동과 떨림을, 왜 뇌 깊은 곳에 전극을 넣어 조절할 수 있을까.

다음에는 STN, GPi, 시상을 실제 기저핵 회로 위에 올려놓고, DBS가 왜 그곳을 표적으로 삼는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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