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배우는 신경해부학 7부 — 떨림은 왜 또 다른 회로인가
서동과 경직은 기저핵 회로로 설명된다. 하지만 떨림은 조금 다르다. 진동 네트워크 전체를 봐야 한다.
7부. 떨림은 왜 또 다른 회로인가
— 느린 몸 안에서, 왜 손은 오히려 규칙적으로 흔들릴까
파킨슨병은 움직임이 느려지는 병이다.
동작이 작아지고, 몸이 굳고, 첫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어떤 환자에서는 손이 끊임없이 떨린다.
움직임이 줄어드는 병인데 왜 한쪽에서는 움직임이 너무 적고, 다른 한쪽에서는 원하지 않는 움직임이 반복되는 것일까.
나는 파킨슨병의 떨림을 오래 보면서 이것이 단순히 **“도파민이 부족해서 생기는 증상”**이라는 한 문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서동과 경직은 비교적 기저핵 회로의 변화로 설명하기 쉽다.
하지만 떨림은 조금 다르다.
특히 파킨슨병의 대표적인 안정시 떨림(rest tremor)은 기저핵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저핵, 시상, 운동피질, 소뇌가 함께 만드는 진동 회로로 이해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그림. 파킨슨병 떨림의 진동 네트워크. 기저핵(STN·GPi)의 비정상 동기화 신호가 시상을 거쳐 소뇌와 운동피질에 전달되며 규칙적인 떨림을 만든다. 스트레스·긴장은 이 회로를 증폭한다.
1. 파킨슨병의 떨림은 다른 증상과 움직임이 다르다
파킨슨병의 주요 운동증상은 흔히 네 가지로 설명한다.
서동(bradykinesia),
경직(rigidity),
안정시 떨림(rest tremor),
자세불안정(postural instability).
그런데 실제로 보면 떨림은 다른 증상들과 꼭 같이 움직이지 않는다.
서동이 심한데 떨림은 거의 없는 환자가 있다.
반대로 걷기는 비교적 괜찮은데 손 떨림이 매우 심한 환자도 있다.
약을 먹었을 때 몸의 느림은 좋아졌는데 떨림은 남을 수도 있고,
반대로 떨림이 먼저 줄어들 수도 있다.
이것은 떨림이 서동이나 경직과 완전히 같은 기전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2. 안정시 떨림은 왜 가만히 있을 때 더 보일까
파킨슨병의 전형적인 떨림은 가만히 있을 때 나타난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있으면 손가락이나 손목이 규칙적으로 떨린다.
그런데 손을 뻗거나 물건을 잡으려고 하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안정시 떨림이다.
물론 실제 환자에서는 자세 떨림이나 동작 떨림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파킨슨 떨림이 가만히 있을 때 잘 나타난다는 것은 중요한 단서다.
움직임을 수행하고 있을 때는 운동피질, 소뇌, 감각 피드백 회로가 적극적으로 작동한다.
반대로 움직임이 없는 상태에서는 특정 진동 회로가 상대적으로 더 드러날 수 있다.
즉 떨림은 단순히 근육이 약해서 떠는 것이 아니라 뇌 회로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리듬성 활동에 가깝다.
3. 떨림은 ‘진동’이다
떨림을 이해할 때 중요한 개념은 oscillation, 진동이다.
신경세포는 하나씩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많은 신경세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때로는 일정한 리듬으로 함께 발화한다.
정상적인 뇌에도 리듬은 존재한다.
하지만 특정 회로에서 비정상적인 동기화가 생기면 그 리듬이 실제 근육 움직임으로 나타날 수 있다.
파킨슨병의 떨림도 이런 비정상적인 진동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즉 문제는 단순히 신경세포가 많이 발화하느냐 적게 발화하느냐가 아니다.
여러 신경세포가 같은 박자로 반복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4. 기저핵은 떨림의 시작에 관여할 수 있다
파킨슨병에서 흑질의 도파민 신경세포가 줄어들면 선조체와 기저핵 회로의 균형이 달라진다.
직접경로와 간접경로의 균형이 바뀌고,
STN, 즉 시상하핵과
GPi, 즉 내측 창백핵의 활동도 변화한다.
이 회로 변화는 서동과 경직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떨림에서도 기저핵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기저핵이 떨림을 혼자 완성한다기보다 떨림을 시작하거나 불안정한 신호를 만들어 다른 회로로 전달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5. 소뇌가 떨림에 관여한다
떨림을 이야기할 때 소뇌를 빼놓기 어렵다.
소뇌는 움직임의 오차를 수정하고 타이밍을 조절한다.
정상적인 운동에서는 매우 유용한 기능이다.
하지만 진동하는 신호가 들어오면 소뇌 역시 그 리듬에 반응하게 된다.
특히
소뇌 → 시상 → 운동피질
로 이어지는 회로는 떨림의 유지와 표현에 관여할 수 있다.
그래서 파킨슨 떨림을 설명할 때는 기저핵 회로와 소뇌 회로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6. 하나의 회로가 아니라 두 회로가 만난다
파킨슨 떨림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생각 가운데 하나는 기저핵 회로가 떨림을 시작하고,
소뇌–시상–피질 회로가 그 떨림을 유지하거나 증폭한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화해서 표현하면 이렇다.
기저핵에서 불안정한 신호가 시작된다.
↓
시상을 거쳐 운동피질로 전달된다.
↓
소뇌 회로가 이 리듬에 참여한다.
↓
운동피질의 리듬성 출력이 근육으로 전달된다.
↓
손이나 팔에서 규칙적인 떨림이 나타난다.
실제 뇌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지만,
떨림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한 부위의 문제로만 보지 않는 것이다.
7.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떨림이 심해질까
파킨슨병 환자는 긴장하거나 불안할 때 떨림이 심해지는 경우가 많다.
의사를 만나거나,
사람들 앞에 서거나,
집중하거나,
감정적으로 긴장할 때 떨림이 커질 수 있다.
이것은 떨림 회로가 운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감정과 주의에 관여하는
변연계,
전전두엽,
자율신경계
등도 기저핵과 시상 회로에 영향을 준다.
따라서 떨림은 감정 상태에 따라 강도가 변할 수 있다.
환자에게는
“마음먹으면 멈출 수 있는 떨림”
이 아니다.
오히려 긴장할수록 뇌 전체의 각성도가 올라가면서 떨림 회로도 더 쉽게 활성화될 수 있다.
8. 왜 걸을 때 한쪽 손이 더 떨릴까
파킨슨병의 떨림은 흔히 비대칭적으로 시작한다.
한쪽 손에서 먼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걷는 동안 한쪽 팔이 자연스럽게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손가락이나 손목이 더 떨리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파킨슨병 자체가 흔히 비대칭적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흑질 도파민 신경세포의 손실과 기저핵 회로 변화가 양쪽에서 동일하게 시작되지 않는다.
따라서 떨림도 한쪽에서 먼저 나타날 수 있다.
9. 떨림은 약에 대한 반응도 다르다
서동이나 경직은 레보도파에 비교적 잘 반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떨림은 환자마다 반응 차이가 크다.
레보도파에 매우 잘 반응하는 떨림도 있고,
약효가 충분한데도 상당 부분 남는 떨림도 있다.
이것은 떨림 회로가 단순히 선조체 도파민 농도 하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도파민이 중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진동 회로에는
시상,
소뇌,
운동피질,
감각 피드백
등 여러 요소가 함께 관여한다.
10. 떨림과 이상운동증은 다르다
겉으로 보면 둘 다 몸이 움직이는 현상이다.
그래서 환자나 보호자는 떨림과 이상운동증을 혼동할 수 있다.
하지만 둘은 움직임의 성격이 다르다.
떨림은 비교적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리듬을 가진다.
반면 이상운동증은 몸통이나 사지가 흐르듯 움직이거나
꼬이거나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기전도 다르다.
이상운동증은 주로 반복적인 도파민 자극과 선조체 회로의 과민성 변화가 중요하다.
떨림은 기저핵과 소뇌–시상–피질 회로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진동 네트워크가 더 중요하다.
11. 그래서 DBS의 표적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여기서 다음 장과 연결되는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만약 떨림이 하나의 진동 회로라면,
그 회로의 중요한 지점을 조절하면 떨림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DBS는 이런 생각과 연결된다.
STN이나 GPi 같은 기저핵 구조를 자극하기도 하고,
특정 상황에서는 시상의 떨림 회로와 관련된 부위를 목표로 하기도 한다.
DBS가 단순히
“뇌에 전기를 줘서 움직이게 하는 치료”
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동기화된 신경회로의 패턴을 바꾸는 치료
라는 점을 이해하면
왜 특정 위치를 자극하는지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몸으로 이해한 떨림
파킨슨병을 오래 겪다 보면 같은 날에도 증상들이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몸이 굳어 있는데 떨림은 심할 수 있다.
몸이 조금 풀렸는데도 떨림은 남아 있을 수 있다.
긴장하면 떨림이 갑자기 커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파킨슨병을
“도파민이 떨어져서 몸이 느려지는 병”
이라는 한 문장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나는 이제 떨림을 조금 다르게 본다.
떨림은 단순히 근육이 떨리는 것이 아니다.
기저핵에서 시작된 불안정한 신호가
시상과 소뇌와 운동피질을 오가면서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 낸 결과일 수 있다.
그래서 파킨슨병의 떨림은
서동이나 경직과 같은 병에서 생기지만,
조금 다른 회로를 통해 표현되는 증상
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해하기 쉽다.
7부 한 줄 정리
파킨슨병의 떨림은 단순한 도파민 부족의 결과라기보다, 기저핵에서 시작된 불안정한 신호가 소뇌–시상–운동피질 회로와 만나 비정상적인 진동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나타나는 증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