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쓰는 약리학 4부 — 약을 조합한다는 것
약을 조합한다는 것은 알약을 쌓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약효가 만나는 시간을 설계하고 하루의 peak와 trough를 조절하는 일이었습니다.
4부. 약을 조합한다는 것
파킨슨병 약을 처음 복용할 때는 한 알의 효과를 본다.
약을 먹기 전보다 몸이 좋아졌는가. 얼마 만에 약효가 나타났는가. 몇 시간 동안 움직일 수 있었는가.
초기에는 이 정도의 질문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러나 병이 진행하고 운동 동요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약 한 알의 효과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약을 먹어야 하고, 빠르게 작용하는 약과 천천히 작용하는 약이 하루 안에서 겹친다. 여기에 도파민 작용제, MAO-B 억제제, COMT 억제제, 아만타딘 같은 약들이 함께 들어온다.
이때부터 치료는 한 알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러 약이 만드는 하루 전체의 곡선을 설계하는 문제가 된다.
나는 오랫동안 약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퍼킨은 얼마나 빨리 듣는가. 마도파 HBS는 얼마나 오래 가는가. 온젠티스는 약효를 얼마나 연장하는가. 아만타딘은 이상운동증을 얼마나 줄여주는가.
그러나 실제 몸에서는 약들이 따로 움직이지 않았다.
앞의 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음 약이 올라왔고, 아침에 먹은 서방형 약이 오후의 곡선에 영향을 주었다. 약효를 연장하려고 사용한 약이 어떤 날에는 OFF를 줄였지만, 다른 날에는 하강 구간을 길게 만들었다.
결국 약을 조합한다는 것은 약의 이름을 여러 개 나열하는 일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속도와 높이와 지속시간을 가진 곡선들을 하루 안에서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18장. 약은 혼자 작용하지 않는다
약 설명서에는 각 약의 작용시간과 반감기가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 환자의 하루에서는 하나의 약만 단독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드물다.
아침에 빠르게 작용하는 레보도파를 먹는다. 조금 뒤 약효가 올라오면서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때 이미 함께 먹은 서방형 레보도파도 천천히 흡수되고 있다.
빠른 약효가 내려갈 무렵 서방형 약효가 올라오면 두 곡선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
빠른 제제 → 먼저 상승
서방형 제제 → 늦게 상승
두 곡선이 겹치며 다음 구간을 받쳐준다
이 조합이 잘 맞으면 급격한 하강을 피하고 좋은 ON을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약의 peak가 예상보다 가까운 시간에 겹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빠른 제제의 효과가 충분히 남아 있는데 서방형 제제까지 올라오면 전체 곡선이 치료구간을 넘어설 수 있다. 그 결과 이상운동증이 나타날 수 있다.
반대로 두 약 사이가 너무 벌어지면 중간에 골짜기가 생긴다. 빠른 약은 이미 내려갔는데 느린 약은 아직 올라오지 않은 상태다.
그 시간에 환자는 OFF나 불완전 ON을 경험할 수 있다.
그래서 조합에서 중요한 것은 각각의 약효가 아니라 약효가 서로 만나는 시간이다.
19장. 빠른 약과 느린 약은 역할이 다르다
나는 빠르게 작용하는 레보도파와 서방형 레보도파를 같은 약의 용량 차이 정도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사용해보면 두 제제는 역할이 다르다.
빠른 제제는 몸을 ON으로 끌어올리는 데 유리하다. 비교적 빨리 흡수되어 깊은 OFF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대신 상승과 하강이 분명하고 작용시간이 짧을 수 있다.
서방형 제제는 천천히 올라오고 오래 남는다. 빠른 제제처럼 몸을 즉시 끌어올리지는 못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ON을 받치거나 다음 복용 사이의 골짜기를 메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는 이를 자동차에 비유해 생각했다.
빠른 제제는 가속페달과 비슷하다.
서방형 제제는 속도를 유지해주는 장치에 가깝다.
출발해야 하는데 속도 유지 장치만 사용하면 답답하다. 반대로 계속 가속페달만 밟으면 속도 변화가 심해진다.
문제는 어느 하나가 더 좋은가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역할이 무엇인가가 중요하다.
깊은 OFF에서 올라와야 하는가. 이미 만들어진 ON을 유지해야 하는가. 다음 복용까지 생기는 골짜기를 메워야 하는가. 야간이나 새벽의 긴 공백을 견뎌야 하는가.
같은 레보도파라도 목표에 따라 제제의 역할이 달라진다.
20장. 조합의 핵심은 peak와 trough다
여러 약을 함께 사용하면 전체 곡선의 높이가 달라진다.
약효가 가장 높은 지점을 peak라고 하고, 가장 낮은 지점을 trough라고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peak를 높이면 몸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실제로 약이 부족한 환자에게는 충분한 peak가 필요하다. 약효가 치료 문턱을 넘지 못하면 incomplete ON이나 ON failure가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운동 동요와 이상운동증이 나타난 뒤에는 peak만 높이는 방식이 문제가 될 수 있다.
peak가 너무 높으면 이상운동증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전체 약효를 지나치게 낮추면 trough까지 함께 낮아져 OFF가 깊어진다.
그래서 치료 목표는 단순히 높은 peak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지나치게 높은 peak는 낮추고, 지나치게 낮은 trough는 올리면서 하루 전체의 변동폭을 줄이는 것이다.
높이 올라갔다 깊이 떨어지는 곡선보다, 조금 낮더라도 오래 유지되는 곡선이 생활에는 더 유리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하루에 몇 번 출력 100을 찍는 것이 아니다.
걷고, 일하고, 식사하고,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상태를 가능한 한 오래 유지하는 것이다.
21장. 약효를 연장한다는 말의 양면
COMT 억제제나 MAO-B 억제제는 레보도파 또는 도파민의 효과가 더 오래 이어지도록 도울 수 있다.
설명만 들으면 약효가 길어지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몸에서는 연장이 항상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좋은 ON이 길어질 수 있다. 다음 복용 전 OFF가 줄어들 수 있다. 레보도파 곡선의 골짜기가 얕아질 수 있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높은 약효가 오래 유지되면서 이상운동증이 증가할 수 있다. 하강이 길어지면서 ON도 OFF도 아닌 애매한 전환 구간에 오래 머물 수도 있다.
나는 이것을 직접 경험하며 한 가지를 배웠다.
약효가 오래간다는 것과 좋은 상태가 오래간다는 것은 반드시 같은 말이 아니다.
무엇이 연장되었는지를 봐야 한다.
좋은 ON이 연장되었는가. 이상운동증이 연장되었는가. 불완전 ON이 길어졌는가. OFF로 내려가는 불편한 전환기가 늘어났는가.
그래서 약효 연장제를 평가할 때는 단순히 다음 약까지 버틴 시간만 보아서는 부족하다.
그 시간 동안 몸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함께 기록해야 한다.
22장. 레보도파가 아닌 약들은 곡선의 바탕을 바꾼다
파킨슨병 치료에는 레보도파 외에도 여러 종류의 약이 사용된다.
도파민 작용제는 도파민 수용체를 자극하여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바탕 효과를 제공할 수 있다. MAO-B 억제제는 도파민의 분해를 억제한다. COMT 억제제는 레보도파의 효과를 연장한다. 아만타딘은 특히 레보도파 유발 이상운동증을 줄이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 약들은 모두 레보도파와 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레보도파는 복용과 증상 변화의 관계가 비교적 뚜렷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반면 다른 약들은 하루 곡선의 바닥이나 반응의 성질을 바꾸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환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 약은 먹어도 바로 좋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즉각적인 상승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역할이 없는 것은 아니다. OFF의 깊이가 줄거나, 레보도파 사이의 간격을 견디기 쉬워지거나, 이상운동증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다.
반대로 바탕 효과가 너무 강해지면 졸림, 어지럼, 환각, 부종, 충동조절 문제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도파민 작용제는 운동증상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수면, 정신증상, 충동성, 혈압과 같은 비운동 영역을 함께 살펴야 한다.
약의 조합은 운동 곡선만 조절하는 일이 아니다. 사람 전체를 조절하는 일이다.
23장. 용량보다 간격이 중요할 때
약효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한 번에 먹는 용량을 늘리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의 용량을 늘리면 peak가 높아질 수 있다. ON은 강해질 수 있지만 이상운동증이나 부작용도 증가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복용 간격을 조절하는 것이다.
큰 용량을 드물게 복용하면 곡선의 위아래가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작은 용량을 더 적절한 간격으로 나누면 peak와 trough의 차이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간격을 지나치게 짧게 하면 앞의 약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다음 약이 계속 겹치며 예상하지 못한 누적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서방형 제제나 약효 연장제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면 눈앞의 증상만 보고 추가 복용한 약이 몇 시간 뒤 다른 약과 겹칠 수 있다.
복용 직후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약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더 먹었다.
하지만 첫 번째 약이 단순히 늦게 흡수되고 있었던 것이라면, 나중에 두 용량이 함께 올라오면서 높은 peak가 만들어질 수 있다.
따라서 용량과 간격은 따로 볼 수 없다.
얼마를 먹었는가와 언제 먹었는가는 하나의 질문이다.
24장. 약은 전날부터 이어진다
나는 하루의 약효를 아침 첫 약부터 생각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 하루는 자정에 끊어지지 않는다.
전날 저녁의 약이 얼마나 남아 있었는지, 밤사이 도파민 공백이 얼마나 길었는지, 잠을 얼마나 잤는지, 야식이나 단백질 섭취가 있었는지에 따라 아침의 출발점이 달라진다.
아침 출력이 10인 날과 40인 날은 같은 아침 약을 먹어도 반응이 다를 수 있다.
출발점이 낮은 날에는 치료 문턱을 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약효가 필요하다. 출발점이 높은 날에는 평소와 같은 용량도 예상보다 높은 peak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약의 조합은 단순한 시간표가 아니다.
전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연결된 24시간의 구조다.
아침 약이 잘 듣지 않을 때 아침 용량만 볼 것이 아니라, 전날 마지막 약과 야간 공백을 함께 봐야 한다.
25장. 식사와 장은 보이지 않는 조합의 일부다
처방전에는 음식과 장운동이 적혀 있지 않지만, 실제 약효곡선에서는 중요한 변수다.
레보도파는 위에서 바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소장으로 이동한 뒤 흡수된다. 위 배출이 늦어지면 약효의 시작도 늦어질 수 있다.
변비, 과식, 지방이 많은 식사, 수면 부족, 스트레스와 파킨슨병 자체의 위장관 운동 변화가 영향을 줄 수 있다.
단백질은 장과 혈액뇌장벽에서 레보도파와 경쟁할 수 있다. 모든 환자가 같은 정도로 영향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특정 식사 뒤 약효 지연이 반복된다면 시간 관계를 기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실제 조합에는 약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약 + 식사 + 장운동 + 수면 + 활동량 + 그날의 출발점이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처방은 같아도 하루의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26장. 추가 복용은 왜 어려운 판단인가
OFF가 오면 빨리 벗어나고 싶다.
몸이 굳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다. 그래서 추가 레보도파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추가 복용에는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질문이 있다.
앞의 약효가 완전히 끝난 것인가. 아니면 아직 흡수되지 않은 것인가. 지금은 하강 중인가. 이미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상태인가. 서방형 약이 뒤에서 올라오고 있지는 않은가.
이 질문에 따라 같은 추가 용량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약효가 정말 부족한 상황에서는 추가 용량이 OFF를 벗어나게 해줄 수 있다. 하지만 앞의 약이 지연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뒤늦게 두 곡선이 겹쳐 이상운동증을 만들 수 있다.
나는 그래서 약효가 늦을 때 단순히 “더 먹을까”라고 묻기보다 먼저 곡선의 방향을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 멈춰 있는가. 조금이라도 올라오는 신호가 있는가. 출력은 20에서 30으로 변했는가. 몸의 긴장이나 걸음에 작은 변화가 생겼는가.
아주 작은 변화가 추가 복용 여부를 판단하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환자가 임의로 약을 조절하라는 뜻이 아니다. 파킨슨병 약의 추가·감량·중단은 부작용과 심각한 상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한다.
기록의 목적은 혼자 처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처방을 함께 조정하기 위해서다.
27장. 좋은 조합은 약이 많은 조합이 아니다
약의 종류가 늘어나면 각 약이 담당하는 역할도 늘어난다.
그러나 약이 많다는 사실 자체가 정교한 치료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약을 추가할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아침의 delayed ON을 줄이기 위한 것인가. 복용 사이의 wearing-off를 줄이기 위한 것인가. 야간 OFF를 줄이기 위한 것인가. peak-dose dyskinesia를 줄이기 위한 것인가. OFF dystonia를 줄이기 위한 것인가.
목적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여러 약을 동시에 바꾸면 무엇이 효과가 있었고 무엇이 부작용을 만들었는지 알기 어려워진다.
조합은 덧셈이 아니다.
한 약을 추가하면 다른 약의 역할과 필요량이 달라질 수 있다. 약효 연장제를 추가하면 기존 레보도파의 효과가 강해질 수 있고, 이상운동증 치료제를 사용해 이상운동증이 줄면 그동안 보이지 않던 다른 증상이 더 분명해질 수도 있다.
따라서 조합을 바꿀 때는 가능하면 한 번에 하나의 변수를 바꾸고 충분한 기간 관찰하는 것이 해석에 도움이 된다.
몸은 실험실처럼 모든 조건을 일정하게 만들 수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바꾸었는지는 알아야 한다.
28장. 기록해야 조합이 보인다
기억만으로 약효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OFF가 깊었던 순간은 강하게 기억된다. 이상운동증이 심했던 날도 오래 남는다. 반면 평범하게 지나간 안정적인 시간은 잘 기억되지 않는다.
그래서 기록하지 않으면 치료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중심으로 흔들릴 수 있다.
약을 먹은 시간. 약의 종류와 용량. 약효의 첫 신호가 온 시간.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한 시간. 이상운동증이나 근긴장이상이 나타난 시간. 다시 떨어지기 시작한 시간. 식사와 수면, 변비 같은 변수.
이 기록을 며칠 동안 겹쳐보면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구조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침마다 시작이 늦는가. 점심 약의 peak가 아침 서방형 약과 겹치는가. 저녁마다 깊은 골짜기가 생기는가. 특정 식사 뒤에 ON failure가 반복되는가. 이상운동증이 최고점에서 나타나는가, 상승과 하강에서 나타나는가.
약의 조합은 처방전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처방과 몸의 반응을 함께 기록할 때 비로소 실제 조합이 보인다.
29장. 나에게 맞는 곡선을 찾는 일
파킨슨병 약물치료에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완벽한 시간표가 없다.
같은 약을 같은 용량으로 먹어도 흡수 속도가 다르고, 질병의 단계가 다르며, 이상운동증이 나타나는 문턱도 다르다. 어떤 환자는 조금의 이상운동증보다 OFF를 훨씬 힘들어하고, 어떤 환자는 OFF보다 이상운동증을 더 견디기 어려워한다.
생활의 목표도 다르다.
아침에 빨리 움직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오후까지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 밤에 화장실을 안전하게 다녀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람도 있다.
좋은 조합은 교과서의 숫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언제 움직여야 하고, 어떤 증상을 가장 피하고 싶으며, 어떤 부작용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약물치료의 최적점은 단순한 약리학적 최적점이 아니다.
그 사람의 생활이 가장 오래 유지되는 지점이다.
4부를 마치며
처음에는 약을 조합한다는 것을 여러 약을 함께 먹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몸으로 겪어보니 조합은 그보다 훨씬 복잡했다.
빠른 약과 느린 약의 역할을 나누는 일. 앞의 약이 내려오기 전에 다음 약을 연결하는 일. 높은 peak를 피하면서 trough가 너무 깊어지지 않게 하는 일. 약효를 연장하되 불편한 전환기까지 늘어나지는 않는지 살피는 일. 식사와 장운동과 수면까지 곡선 위에 함께 올려놓는 일.
결국 약을 조합한다는 것은 알약을 쌓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을 조합하는 일이었다.
한 알의 용량보다 하루 전체의 흐름을 보고,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보다 반복되는 패턴을 보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완벽한 조합을 찾지 못했다.
아마 완벽한 조합은 영원히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병은 변하고, 몸은 변하고, 생활도 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합은 한번 정하고 끝나는 답이 아니다.
몸의 변화를 관찰하며 계속 수정해가는 과정이다.
오늘 잘 맞았던 조합이 내일도 반드시 같은 곡선을 만들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록이 쌓이면 적어도 내가 어디에서 올라오고, 어디에서 떨어지며, 어떤 약들이 어느 시간에 만나는지는 조금씩 알 수 있다.
그 지점부터 치료는 무작정 약을 더하거나 줄이는 일이 아니게 된다.
나의 하루를 조금 더 평평하게 만드는 일이 된다.
좋은 조합이란 가장 많은 약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조합도 아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오래 지켜주고, 깊은 OFF와 감당하기 어려운 이상운동증 사이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조합이다.
나는 오늘도 그 좁은 길을 찾고 있다.
약의 이름이 아니라 곡선을 보면서. 한 번의 peak가 아니라 하루 전체를 보면서. 그리고 내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를 기록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