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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기 · 몸으로 쓰는 약리학

몸으로 쓰는 약리학 6부 — 기록이 약리학이 되는 순간

“약이 잘 안 들어요”라는 한 문장을 시간, 출력, 첫 신호와 지속시간으로 나누어 적기 시작하자 몸의 변화가 조금씩 패턴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몸으로 쓰는 약리학 6부 — 기록이 약리학이 되는 순간

파킨슨병 환자가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하는 말 중 하나는 이것이다.

“약이 잘 안 들어요.”

나도 수없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이 한 문장에는 너무 많은 가능성이 들어 있다. 늦게 들어오는 것인지. 약하게 들어오는 것인지. 전혀 안 들어오는 것인지. 잠깐 들어왔다 금방 떨어지는 것인지. 이상운동증이 생겨서 오히려 불편한 것인지.

기록을 시작하면서 이 표현들이 조금씩 분리되기 시작했다.

39장. ON과 OFF만으로는 부족했다

처음에는 하루를 ON과 OFF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지만 실제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OFF에서 바로 ON으로 뛰어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신호가 먼저 온다. 발이 조금 가벼워진다. 몸이 일어나기 쉬워진다. 걷기 시작하는 저항이 줄어든다. 그 다음에야 충분한 ON에 도달한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내려간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두 가지 상태가 아니라 곡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곡선을 적으려면 두 칸으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출력점수 0100이 필요했다. OFF 10. 조금 나아진 30. 불완전한 ON 50. 충분한 ON 8090. 숫자는 정확한 생물학적 측정값은 아니지만 변화의 방향을 남겨준다.

40장. 첫 신호를 적기 시작하다

약 복용 시간보다 더 중요한 기록이 생겼다.

첫 신호가 언제 왔는가.

예를 들어 07시 20분에 약을 복용하고 08시에 첫 신호가 왔다면 그날의 상승 시작은 약 40분 후다. 다른 날 08시 20분에 시작했다면 60분이다.

이 차이는 기억만으로는 쉽게 사라진다. 하지만 기록으로 남기면 비교할 수 있다.

그 순간부터 약리학은 교과서의 Tmax가 아니라 내 몸의 시간축 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41장. 네 가지 패턴을 기록으로 구분하다

2부에서 나는 약이 안 듣는 방식에 네 가지 이름을 붙였다. Delayed ON, Incomplete ON, ON failure, Wearing-off. 기록은 그 이름을 실제 하루에 붙이는 일이었다.

Delayed ON은 복용 시각과 첫 신호 시각 사이의 간격으로 보였다. ‘늦었다’는 느낌이 40분과 80분이라는 숫자로 바뀌자, 위장 상태와 식사, 공복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날들이 눈에 들어왔다.

Incomplete ON은 출력점수로 보였다. 몸은 전보다 낫지만 50에서 멈춘 날. 보행은 여전히 뻣뻣하고 자동화된 움직임이 돌아오지 않는 날. ON과 OFF 두 칸만 있었다면 이런 날은 애매하게 ON으로 기록됐을 것이다.

ON failure는 의미 있는 상승이 거의 없었던 날로 남았다. 한 번의 실패는 원인을 말해주지 않는다. 흡수가 충분했는가, 식사와 가까웠는가, 그날의 OFF가 깊었는가, 다른 약과 겹쳤는가. 하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패턴이 된다.

Wearing-off는 ON이 유지된 시간으로 보였다. 조금 떨어지면 바로 보행이 나빠지고, 조금 올라가면 다시 살아나는 날이 늘었다. 2부 11장에서 완충 능력이 줄어드는 곡선이라고 썼던 것이 기록에서는 ON의 길이가 짧아지고 변동이 가팔라지는 모양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상운동증도 기록해야 했다. 처음에는 이상운동증이 생기면 그냥 ‘약이 많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작 시각과 끝난 시각, 그때의 출력, 직전 약 복용, 식사를 함께 적어보니 3부 11장의 구분이 실제로 보였다. 약효가 가장 높은 구간에서 나타나는 것,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구간에서 나타나는 것, 근긴장이상과 섞여 나타나는 것. 이런 차이는 복용량만 기록해서는 보이지 않는다.

42장. 한 날보다 여러 날이 중요했다

5부에서 본 8월 31일과 9월 1일 오전의 패턴이 비슷하게 나타났던 것은 그래서 의미가 있었다.

한 번 잘 된 것은 우연일 수 있다. 두 번 비슷하면 가설이 생긴다. 세 번, 네 번 반복되면 패턴이라고 부를 근거가 조금 더 생긴다.

이것이 기록과 기억의 차이다.

기억은 강렬한 하루를 남긴다. 기록은 반복되는 하루를 남긴다.

43장. 기록해야 할 것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든 것을 적으려 했다. 그러면 오래 못 간다.

결국 중요한 것은 몇 가지였다.

복용 시각. 첫 신호. 충분한 ON. OFF 시작. 출력점수. 이상운동증. 식사. 수면. 배변.

이 정도만 꾸준히 남겨도 하루의 곡선은 상당히 선명해진다.

기록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계속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해야 한다.

44장. 기록은 처방을 대신하지 않는다

기록을 많이 한다고 스스로 치료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기록의 가장 큰 장점은 진료실에서 질문을 더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약이 안 들어요.”

보다

“최근에는 아침 첫 복용 후 첫 신호까지 80~120분 걸리는 날이 반복됩니다.”

가 훨씬 많은 정보를 준다.

“이상운동이 심합니다.”

보다

“오후 식사 후 복용한 날에는 피크가 늦어지고 이상운동증이 2시간 이상 지속된 기록이 있습니다.”

가 더 구체적이다.

기록은 처방을 대신하는 도구가 아니라 의료진과 대화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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